✐하운 김남열의 사람 그리고 사랑 ✐

22/03/2019

이중적 인간의 아름다움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중적 인격과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는 악마의 얼굴을 한 천사의 얼굴이며, 또 하나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의 얼굴이다. 항상 이 두 가지의 얼굴은 함께 사람들에게 다가 온다. 그리고 전혀 표식이 없다. 특히, 판단의 중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두 가지의 얼굴이 같은 모습으로 비추어 진다. 더욱이 혼란이 가중되어 가는 시대에, 큰 소리가 최고라고 여겨지는 시대에, 단체, 노조. 집단의 이기적 단체가 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처럼 자신이 제일 빛을 발하며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에, 우리는 난파선의 사공처럼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보이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없는가.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제3의 시각이다. 제3의 눈이다.그것은 3차원의 세계에서 바라다보는 햇갈리는 시각도 아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쉽다는 것처럼, 가장 쉬운 것이 어렵다는 말처럼 세상에서 이보다 쉬운 행위에 의하여 바라다봄은 없음직하다. 그것은 모름지기 전체적 건강성의 사고적 생각이다. 인간은 두 가지 형태의 사고에 길들어져 왔다. 하나는 수평적 사고이며, 하나는 수직적 사고이다. 전자는 서양적인 사유의 축이 되어 왔으며, 후자는 동양적인 사유의 축이 되어왔다. 전자의 수평적인 사유는 a-b-c-의 논리인 사유를 중시하는 반면에 후자의 수직적 사유는a-a-a-비논리적인 사유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이 둘 모두가 이성적 사유에 의한 맹점으로 인하여 전자는 전투성을 띄게 되는 사유가 되었고, 후자는 도피주의 적인 비전투성을 강조하게 되었으나 인간의 발전에는 커다란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든 것 같다.이 둘 모두 차거나 뜨거웠던 이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발전은 이성적인 양자의 논리만으로 나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인 만큼, 오감에 의한 감정은 인간의 이성을 중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수평적이며, 수직적인 사유가 감정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물렁한 사고의 테두리를 모양새 있게 규정한 것이 신앙이다. 말하자면 이성과 신앙이 조화롭게 결집된 가운데의 이분법적인 수평적 사고와 수직적인 사고는 분명, 사고의 힘이 있다. 어수선한 가운데 어떠한 모습을 한 두 개의 얼굴이 다가오더라도 충분하게 가릴 수 있는 미시안적이며, 원시안적인 눈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나 행운은 그냥 그대로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오지 않는다. 받을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 다가간다."마음이 비우진,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한 그만이 자신의 그릇에 복록을 채우며 세상 발전에 일조한다." "몽매한 사람은 사회 발전을 위해 일조 할 수 없는 존재이다."